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람세스 3세 (문단 편집) == 암살 시도와 사망 == || [[파일:xCkpzVxqpFrqaLv9DiGGLa.jpg|height=300]] || [[파일:5416415965_26c4c3e771_c.jpg|height=300]] || || 람세스 3세의 미라 || 람세스 3세의 석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람세스 3세의 재위 말년에 그에 대한 암살 시도가 벌어졌다. 3명의 아내들 중 하나였던 티예 왕비가 그를 죽이고 제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자 음모를 꾸민 것. 당시 람세스 3세는 후계자로 람세스 아멘헤르케세프, 즉 후일 [[람세스 4세]]를 낙점해놓은 상태였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티예 왕비가 자신의 아들 펜타웨레트[* 펜타웨레트는 본명이 아니라 하술할 토리노 법정 파피루스의 기록자가 설정한 일종의 가명이다. 기록자는 티예를 제외한 모든 가담자를 가명으로 기록하였는데, 대부분 '~신이 증오한다' 같은 식의 모욕적인 작명이었다.][* 펜타웨레트의 이름 뜻은 '위대한 어머니에게 속한 자'라는 뜻으로, 토리노 법정 파피루스에서 이러한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는 암살가담자들에 대한 저주와 증오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나 왕자인 펜타웨레트의 이름의 의미는 어머니인 티예와 함께 암살계획을 획책했던 점에서 고려해보면 "마마보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볼 수 있다.]와 함께 일을 터뜨렸다. 파라오가 될 생각에 눈이 멀은 펜타웨레트는 각지의 관료들을 선동하여 음모에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하렘]]의 궁중책임자, 시종관, 보물 담당관들을 합류시키는 데까지 성공했다. 티예 왕비와 펜테웨레트는 람세스 3세가 [[룩소르|테베]]의 하렘 궁전 서쪽 탑에서 쉬고 있을 때 급습했다. 파라오의 하렘은 정말 제한적인 인원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고, 이 곳에서 파라오를 죽이려 한다면 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 음모자들이 람세스 3세를 일격에 죽였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다만 람세스 3세의 미라를 부검해본 결과 목 뒤쪽에 [[식도]]가 드러날 정도로 날카롭고 깊숙한 상처가 나있었고, 학자들은 만일 람세스 3세가 이런 상처를 입었다면 설사 암살자들로부터 일시적으로 도망쳤을지라도 얼마 못가 사망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람세스 3세의 엄지발가락 역시 잘려나간 상태였는데, 뼈의 재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끼]]처럼 무언가 무거운 둔기로 발가락이 잘린 뒤 바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파라오가 발가락이 잘려나갈만한 일은 암살 시도 밖에 없었으니 발가락의 절단과 목의 치명상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학계에서는 람세스 3세가 암살 시도로 인한 치명상으로 인해 며칠 후 죽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티예 왕비와 펜타웨레트는 왕에게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람세스 3세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 왕족이 발빠르게 대처해 왕궁을 확보했고, 왕세자였던 아멘헤르케세프가 도시로 진입해 펜타웨레트를 포함해 음모자들을 모두 체포하면서 펜타웨레트의 꿈은 헛물로 돌아갔다. 람세스 3세가 완전히 사망하자[* 이미 상처를 입은 직후 사망했다는 말도 있다.] 아멘헤르케세프는 람세스 4세로 즉위했고, 즉위 직후 12명의 신하들을 골라 수사관직을 맡겼다. 5번에 걸친 재판 끝에[* 이 재판의 경과는 '토리노 법정 파피루스'에 상세히 나와있다. 이 파피루스는 완곡한 어조로 마치 살아남은 람세스 3세가 이 재판을 시행한 것처럼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학자들도 정확한 사건의 순서를 확신하지 못했으나, 상술했듯 람세스 3세의 미라가 다시 분석되어 그가 치명상을 입었음이 명확해진 후로는 람세스 4세가 재판을 시행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총 28명의 암살 가담자들이 사형에 처해졌다. 주도자인 펜타웨레트는 왕족이라는 이유로 자살을 허락받았다.[* 람세스 3세의 무덤 인근에서 제대로 된 관에도 묻히지 못한 한 삐쩍 마른 미라 한 구가 발견되었다. 정식으로 미라 처리가 된 것도 아니고 불결한 염소 가죽에 싸여 있었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펜타웨레트의 미라일 것이라 본다. 고고학적 정황과 더불어 유전적 증거도 힘을 실어준다. 람세스 3세의 미라와 부계 하플로그룹 및 상당수의 유전자가 일치하기 때문. 최근에는 이 미라가 목매어 숨졌다는 분석까지 나와 완전히 확실시되는 분위기이다. 분석에 따르면 그는 사망 당시 18-20세였다.] 펜타웨레트와 함께 주요 요인이었던 티예 왕비에 대한 처우는 나와있지 않다.[* 다만 고고학자들은 몰래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람세스 4세는 이렇게 쿠데타를 정리하고 새롭게 왕위에 올랐으나, 람세스 4세의 치세부터 이집트는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걷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